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킬 군항의 반란 (문단 편집) == 반란이 벌어지다 == 이미 전세는 연합군의 편이였고 대양함대가 아무리 노력해 봤자 연합군 [[해군]]을 [[유틀란트 해전|이길 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미 이 전투에서 대양함대의 환상은 깨진 지 오래였다. "죄수가 창살 뚫고 나와 간수를 두들겨패고 창살 안으로 돌아갔다"는 비유도 있지만 대양함대의 피해 역시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창 수리를 마치고 다시 출격하려고 하면 이미 영국 왕립해군 대함대가 수리를 마친 뒤였다.] 이런 명령은 결국 [[오키나와 전투#s-4.3.1.1|자살특공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수병들도 바보가 아니라 불리한 전황과 출항 명령으로 인하여 수병들 사이에서는 상부가 이미 진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본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결국 이는 대대적인 반란으로 이어졌다. 반란의 시작을 끊은 건 [[빌헬름스하펜]]이었다. 출항 예정 전날이었던 10월 29일 밤 빌헬름스하펜에서는 도합 300명에 이르는 폰 데어 탄 함과 데어플링어 함의 수병들과 승조원들이 일제히 내륙으로 도주, [[탈영]]한 것을 시작으로 제3전대 소속의 함선 3척에서 수병들이 닻을 올리기를 거부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전함 튀링겐과 헬골란트 함에서는 수병들에 의한 [[사보타주]]가 일어났다. 당일 밤에만 총 '''7척'''의 순양전함과 전함에서 반란이 발생했다. 심지어 작전의 기함이었던 [[바이에른급 전함|바덴]] 함에서마저도 수병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등[* 군기가 제일 잘 잡혀 있어야 하는 기함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질 정도였으니 당시 독일 제국 해군이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 알 수 있다.] 곳곳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고 '''독일 제국 해군은 이들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다.''' 다만 이는 전함이나 순양전함 등 대형함에만 국한된 것이었고 잠수함, 어뢰정, 소해정 같은 소형함들에서는 여전히 수병들이 충성을 맹세하였기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소형함들은 인원수가 적었던 만큼 수병들과 부사관, 장교들 사이의 소통이 더 활발했고 유대감이 끈끈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참고로 이렇게 대형함들보다 인원수가 적은 소형함들에서 수병들이 더 높은 충성심과 전투의지를 보이는 현상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나 [[일본 제국 해군]]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결국 이런 사태에 놀란 히퍼 제독은 10월 30일 작전을 취소했지만 수병들의 반란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규모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급기야 11월 3일 [[킬]]에서 대대적인 반란과 파업이 일어났다. 게다가 작전 취소로 빌헬름스파헨에서 모항 킬로 귀항한 제3전대 소속 일부 함선들의 수병들이 킬 군항의 수병들의 반란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Bundesarchiv_Bild_146-1976-067-10A%2C_Matrosen-Aufstand.jpg|width=100%]]}}}|| || 빌헬름스하펜 군항에서 파업 중인 수병들 || 독일 제국 [[육군]]이 아닌 해군에서 반란이 일어난 이유는 해군 기지들이 육군 기준으로 후방이자 [[도시]] 지역에 위치해 있어 민간과의 접촉이 잦았고 출항하지 않은 동안은 많은 수병들과 [[부사관]]들이 선상 혹은 육상 병영이나 영외 거주자들의 주택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후방의 피폐한 사정을 더 절실하게 체험하고 있었고 종전과 관련된 정보의 유통도 원활했던 터라 용이하게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반면 정보 통제가 성공적이었던 독일 육군은 이런 반란은 [[러시아]]와 [[프랑스]], [[영국]]의 모략에 놀아나는 것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랬던 제국 육군도 연합군 공세 최후반기에는 전의를 상실하고 스스로 붕괴되었다. 이 불씨는 곧 독일 전역으로 번져 전국의 노동자들도 파업을 선언하였고 '''11월 7일 [[뮌헨]]에서는 [[바이에른]]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이렇게 되자 독일 의회에서도 공화국이 선언되었고 빌헬름 2세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11월 9일에 결국 황제는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킬 군항의 반란이 11월 3일에 벌어졌으니 이 반란 이후 독일 제국은 1주일도 가지 못하고 붕괴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